안영화의 브라보 노년(22) 자기 성찰, 그리고 용서로 미움과 증오를 쓸어버리자
안영화의 브라보 노년(22) 자기 성찰, 그리고 용서로 미움과 증오를 쓸어버리자
  • 한국노년신문
  • 승인 2019.01.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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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 전반기에서 가족부양, 국방의무, 직장의 업무, 끊임없는 확장과 개척만을 요구하던 성공 중심사회에서 해야만 할 일들로 내 삶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 노년은 잘 살아보자는 확고한 목표와 부단한 노력으로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을 획득하는 영광도 누렸다.

정상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온 과거와는 달리 이제야 저 하늘 구름의 신비스러움 그리고 지나쳐버린 꽃들도 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았고, 내 안에 나를 만날 수 있는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만난 것이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제약을 받지만 이전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기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선 나 자신부터 만나자,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과 함께.

우리에게는 440만년이상 진화 되여 온 뇌(腦)와 그 소프트웨어인 생각이 있다. 생각은 일의 씨앗을 제공함은 물론 그 일이 잘 되게 한다.

많은 이에게 사랑 받던 테너 가수 고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음악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청각적 형상화라는 것이다. 역도 선수 장미란은 경기 전날 저녁 식사부터 경기장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 전 과정을 상상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 상상이 실현되었다(Imagination comes True)고 한다. “모든 일에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생각의 힘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인생 후반기의 노년은 지혜와 관용 보살핌과 봉사와 같은 완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적 삶을 살아야 한다.

톨스토이는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 여기지만,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게 된다”고 했다

사랑스런 꽃동산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을 때, 아지랑이 속에서 나비의 춤추는 모습에서, 이들이들한 녹음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들을 때, 잔디밭에 큰 대자로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볼 때, 산에서 바라보는 두 물 머리의 합쳐지는 모습과 한밤중에 총총히 반짝이는 별들의 속삭임에서 아름답고 신비스러움과 끝없는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아! 그래서 자연을 펼쳐 놓은 성경이라 하는구나!

자연은 성경과 함께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은 불변의 진리를 소유한 영원한 인류의 스승이다.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삶의 지혜와 이치를 배운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눈부신 태양이 모두를 공평하게 비춰주는 그 큰 사랑에 감사하며,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노란 새싹과 꽃잎들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맙듯이 우리 후반기 노년의 삶도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전반기처럼 성공적인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사랑이다. 내가 있기에 네가 있고, 너 있기에 나 또한 있는 것,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린토1서13~2)라는 간절한 가르침에 감사하자. 우리는 신문에서, 거리에서, 부끄러운 일들을 보고 때로는 경험까지 한다. 자유사회의 시민으로서의 도덕도 노년의 우리가 다시 세우고 지켜야 한다.

시민의식이란 공공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유와 통제, 사익과 공익을 잘 조화시키는 지혜를 내면화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주의 국가를 형성시킨 주체였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특성으로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도덕이 없다면 사회라는 이 큰 규모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도덕은 참으로 소중한 인간만의 자산이다.

어디 그 뿐이랴.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삶과 행위에 대해 윤리적으로 반성할 수 있으며,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서 윤리적 반성과 성찰이 인간다운 삶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나를 나답게 잘 관리함이 곧 노년의 불로초다.

성찰하고, 용서하자. 소중한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사회,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하여!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합리적 비평을 하거나 깊이 성찰하려 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성급한 주장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비이성적 결단이 집단화될 때 그 사회는 매우 위험하게 된다. 정국을 뒤흔들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시비로 일어난 대규모 촛불시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도덕이 무시되고, 시민의식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존재할까? 뼈저린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때다.

용서란 잘못한 사람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행위이다.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 죄도 용서해 주십시오.”(누가복음 11:4) 잘 못할 수도 있기에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경영진과 노조가 갖가지 주제로 반목하고 있다. 용서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를 밝혀주고 새로운 사랑과 희망의 싹을 돋게 할 수는 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힘이다.

노년들이 먼저 자기 성찰과 용서로 미움과 증오를 쓸어버리자!

브라보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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