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빨간 십자가와 김칫국물
도란도란- 빨간 십자가와 김칫국물
  • 문효원 기자
  • 승인 2019.01.09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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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가 골목을 빠져 나간다. 새벽에 쌀쌀한 바람을 맞고 걸어가는데 저 멀리 옅은 안개 속에 빨간 십자가 여러 개가 보인다.

빨간 십자가. 나는 독일과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밤에 외출을 잘 안 해서 기억에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곳에서 본 십자가는 빨간색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본에는 기독교가 인구에 1%정도이기 때문에 심자가 자체를 보기가 어렵다.

나는 어둠속에 빛나는 그 많은 빨간 십자가를 처음 대했을 때 ‘이 나라가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렸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빨간색이라고 하면 김치 또한 빨간색이다. 요즘 ‘기무지’라고 하여 일본사람들에게도 아주 익숙한 단어다. 88올림픽, 2002년 월드컵, 그리고 ‘겨울연가’ 를 신호탄으로 맹위를 떨치는 ‘한류’ 영향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왔다 가기도 하고 김치를 즐겨 먹게 되었다. 하지만 김치가 왜 빨간색인지에 대해 아는 일본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김치는 원래 빨간색이 아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빨갛게 되었는가. 임진왜란 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백성들이 왜군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은 적군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기위해 태워서 ‘메쯔부시’(눈을 망가뜨린다는 뜻의 일본말)로 쓰다가 남은 고추를 두고 간 것이다. 그것을 주워다 심어 수확을 한 뒤 김치에 넣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 나는 또 김치가 마치 피를 흘린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이웃에 ‘부부싸움을 하면 김치를 담근다’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이는 나와 비슷했다. ‘속상하고 남편이 미워서 그 때 과연 어떤 김치를 담구실까 하고 생각했다.

“미운 마음으로 요리를 하면 눈에 안보이지만 독과 같은 요소가 들어가서 소화 불량 또는 계속 먹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한번은 그 아주머니가 배추김치를 주셨다. 어떤 맛이었을까요? 대단히 맛있는 김치였다.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 어울러져 김치는 물론 김칫국물까지 정말 맛있었다. ‘이것이 진짜 김치 맛이구나!‘ 그 때까지 내가 만든 김치를 남편이 맛이 없어도 그냥 참고 먹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국 음식문화에서 대표선수 중에 대표가 김치가 아닌가. 일본에서 들어 왔다고 하지만 원래 ‘토우가라시(고추)’는 남미가 원산지이고 콜럼버스가 전했다고 한다. 이름이 ‘토우가라시’라 해서 ‘토우’가 중국 당나라 당(唐)자라 더욱 헷갈리는데 일본에서는 평상시 요리에서 잘 안 쓴다. 우동을 먹을 때 ‘시치미토우가라시(일곱 가지 맛 고추)’ ‘이치미토우가라시(한 가지 맛 고추)’ 라고 해서 위에 뿌려서 쓰는 정도다.

나는 이제 귀화하고 나서 27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나는 한국에 기독교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전파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고 실천하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사상이 한국역사와 민족성에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빨간 십자가, 그리고 그것과 내 마음 속에 있는 빨간 김칫국물이 오버랩 된다. 그리고 그 김치를 이제 나도 늘 담구고 오늘도 맛있게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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