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관들 “후배들이 알아서 한 일”
전직 대법관들 “후배들이 알아서 한 일”
  • 김영자 기자
  • 승인 2018.11.30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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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전부 기억할 수 없다” 부인
책임 회피로 각자도생 나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윗선’에 해당하는 전직 고위 법관들이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발뺌하거나 “후배 법관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하급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다.

대부분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법원행정처 심의관들과는 상반된 태도다. 법조계에서는 현직 시절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전직 고위 법관들이 ‘폭탄 내던지기’에 가까운 책임 회피로 본격적인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의혹 사건의 ‘키맨’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15일 첫 검찰 조사를 받을 때만 해도 그가 법원행정처장 이상 윗선의 범행을 어느 정도는 털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없지 않았다. 수사 초반 자신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되자 주변에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데다, 소환 조사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분산시킬 필요를 느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은 그러나 네 차례 소환 조사에서 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일부 혐의는 문건을 작성한 심의관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사실관계는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부적절하지만 죄는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구속된 뒤 그의 변호인은 “법리보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된 부당한 구속”이라며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의 직속 상관이었던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좀 더 적극적인 부인 전략을 썼다. 법리논쟁 대신 “업무는 (법원행정처 담당) 실장 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임 전 차장 이하 후배 판사들에게 책임을 넘겼다. 옛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에 개입한 의혹에는 “억지로 (재판 절차나 판결을) 바꾸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박 전 대법관은 “원론적이고 정당한 지시”라는 주장도 했다. 직권을 남용해 부당한 업무를 시키지 않았지만, 후배들이 ‘과잉 충성’을 해 사법농단 사태가 벌어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후임 법원행정처장인 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23일과 24일 연이은 조사에서도 혐의를 인정하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법원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도 한다. 혐의를 인정할 경우 곧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책임이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수사 확대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법리에 밝은 이들이 자신의 혐의를 최소화하려는 단순한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하관계에 있는 지시자를 모두 직권남용 혐의의 공범으로 판단한 검찰의 수사계획을 읽고서 책임을 아래쪽으로 떠밀고 자신은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윗선’의 개입을 인정하는 순간 그 지시를 받아 실무자에게 전달한 자신도 공범이 되기 때문에 상급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자신이 책임지고 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조직 보호 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순전히 형사사건 피의자이자 법기술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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